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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시 - 2009-08-31 12:12:33
[9월의 독립운동가]
의열단 정예간부를 양성한 명조련사 이종희
 

국가보훈처(처장 김 양)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종희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종희선생은 1890년 4월 19일, 전라도 금구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전후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선생은 망명 후 1919년 조직되어 일본인 관리 암살 및 관청파괴를 주도한 '의열단'에 정식단원으로 가입하여 의열투쟁에 투신했으며, 1925년 북경에서 밀정 김달하 처단 거사에 참여한 선생은 1926년 1월에 광주로 이동하여 다른 10여 명 단원들과 함께 황포군관학교 제4기 보병과에 입학해 재광동조선혁명군인회와 유월한국혁명동지회에 참여했다.

1926년 10월에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소위로 임관한 선생은 남창 주둔 국민혁명군 부대에 배속되어 근무하면서 의열단 남창지부원으로 계속 활동하는 한편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으로서 한인청년 사관 양성에 힘썼다.

또한, 1937년에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으로 약산 김원봉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이끌어갔고, 이어 1938년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을 포함한 100여명의 정예요원들로 구성된 조선의용대를 조직에 참여했다.

1940년 말 일본군과의 직접전에 돌입하면서 조선의용대는 화북지역 이동을 결의하고 황하를 건너 태항산 일대로 이동하였고, 이어 1942년 12월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었다. 김원봉이 광복군 총사령부 부사령 겸 제1지대장이었고 선생은 제1지대장의 소교 계급을 부여받았으며 1943년 김원봉의 뒤를 이어 제1지대 지대장을 맡아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어나갔다. 

선생은 폐병으로 고통 받는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했으며, 1946년 4월 29일 환국선 수송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였으나 고국 땅을 밟기 직전 선중에서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2009-08-31 12:12:33 / 피현진 기자(mycart@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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