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시장 김주영)에서는 22일 오후 2시 영주시민회관에서 순흥 단종복위 의거의 역사적 재평가를 위한 학술포럼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순흥단종복위 의거 개요',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운동', '금성대군과 순흥단종복위 의거의 시 말'을 주제로 단종 복위 의거에 참여했던 선현들의 충절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계기로 마련됐다.
영주시가 주최하고, 영주문화원(원장 박찬극)이 주관한 이 자리에는 김주영 영주시장과 김인환 영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포럼 발표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정축년(1457) '단종복위 의거'는 순흥도호부의 폐부와 충절을 지킨 많은 선현의 희생을 낳았으나 그간 충절의 의로운 길을 택하고 선비의 길을 걸었던 선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학계와 역사가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태백산과 소백산의 양백지간에 자리 잡은 영주시 순흥면은 비봉산을 진산으로 하는 역사의 고장이다. 죽계구곡을 굽이쳐 흐르는 계곡의 물은 제월교를 지나 낙동강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이 계곡물은 1457년 정축지변 당시 끝없이 피로 물들었었다. 그 이름 없는 무수한 영혼의 피가 끝을 이룬 곳이 '피 끝 마을'이다.
1455년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켰다. 이는 천륜을 저버린 패륜이었다. 이때부터 인인(仁人)과 지사(志士)들은 단종을 복위시키고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이는 충절이었다.
당시 순흥은 그 중심이었다. 세조 2년에 동생인 금성이 순흥으로 유배되면서 부사 이보흠과 수많은 선비가 순흥 사민(士民)들과 한마음으로 의거에 가담했다.
거사 직전 노비와 시녀가 내통하여 격문을 훔쳤다. 기천 현감 김효급이 세조에게 고변하여 순흥은 불바다로 변하고 가담한 선비들과 지역민이 관군들에게 처참하게 도륙되어 평정됐다. 절의를 지킨 이들의 참혹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순흥은 역모의 땅으로 낙인찍혀 눈도 귀도 입도 없는 세상으로 226년 동안 적막한 고장이 되고 말았다. 이에 좌절하지 않고, 지역의 선비들과 금성대군 후손들이 100여 년간 애절하게 충의를 인정할 것을 조정에 상소해 1682년 숙종 8년 순흥도호부가 복설되고 금성대군과 부사 이보흠 등 중심인물에 대한 복권을 이뤘다.
반면 지역의 이름 없이 충의(忠義)를 실천하다 희생된 수많은 사민은 왕조실록이나 사기에도 기록조차 없다. 550년이 지난 지금도 바르게 평가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제는 순흥 단종 복위의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정리할 때라고 보고 있다.
박찬극 영주문화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실록(實錄)이나 사초(史草)의 기록에도 없는 '정축지변(丁丑之變)'의 진실을 선비들의 연려실기술, 기문, 문집, 제반 사료를 조사 연구해 발표하시는 사계(斯界)의 원로이신 류영박 교수님, 오종록 교수님, 박찬수 교수님, 토론을 맡으신 강병수 교수님, 한국고문헌연구소 서수용 소장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라며 "지역의 역사문화발전에 항상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김주영 시장님, 장윤석 국회의원님, 김인환 시의회 의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영주시 관계자는 "이번 학술포럼을 통해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위상을 재정립하고, 충절의 고장 영주의 이미지를 대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영주시는 지역 문화유산과 정신문화를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학술포럼 개최 등 선비의 고장 영주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알릴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관련사진>
2008-12-22 20:23:39 /
김용호 기자(yaho@ugn.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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