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쯤이었다.

"최작가 잘 있소."

"아, 예 국장님."

"석불 하나 좀 봐주소."

안동시청에 근무하는 김현승국장의 낮 익은 목소리였다.

석불은 도산면을 지나 가송 가는 길목인 '숯골'이라는 곳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었다.

영지 고옹에서 용수사로 모셔온 석불

그리고 다시 달포쯤 흘렀을 때였다.

"안가 봤제."

"죄송합니다."

"사람이 기다리니 한번 꼭 가보소."

나를 기다린다는 사람은 김국장님의 지인이라는 동일화방 김영대 사장이었다. 송구한 마음에 나는 그날 막 바로 이재원(안동시근로자복지관)관장을 동행삼아 석불을 찾아 나섰다.

숯골의 입구는 가송 초입의 '들꽃 피는 언덕'을 500m쯤 지나 반대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골을 타고 고불고불 7분 가량 산길을 올라가니 김영대 사장의 손때가 묻은 영지(領地) 민박 고옹(농촌관광체험)이 나왔다.

그는 이 숯골에다 5년 전부터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들러 자신만의 성(城)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여기 와서 단체로 놀며 유산(遊山)이 따로 없겠어."

애재원관장의 말마따나 이곳은 단체에서 연수나 모임 하기에 제격인 건물이 이곳저곳에 들어서 있었다.

석불은 그중 산채의 중간 건물에 모셔져 있었다. 살펴보니 주조기법이 우리나라의 전통 양식과는 어딘가 달라보였다.

"한 1백년 된 것 같은 데, 일본 쪽 양식 같습니다만."

나는 대충 눈대중으로 김영대 사장에게 내가 본 부처님의 형상을 전했다.

"맞습니다. 제게 이 석불을 전해 준 교수의 말에 의하면 원래 이 부처님은 지금은 수몰이 된 임동의 어느 사찰에 모셔져 있었다고 합니다."

"불심 깊은 어느 일본 분이 기증을 한 것 같은데요."

옆에서 함께 불상을 지켜보던 이재원 관장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 말씀도 정확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되고 나서 영덕 강구에 정착한 일본인 선주가 이 부처님을 조성하여 임동의 어느 절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그 후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나서 강구에 정착했던 일본인이 모두가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이 부처님을 조성한 그 일본인 선주는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임동의 그 절에 기탁을 하고 말년을 그곳에서 보내다 안동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최성달 작가와 김영대 사장 봉행스님이 한일 우호 부처님을 용수사에 모시기 위해 석불을 옮기고 있다.

김영대 사장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조목조목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 부처님을 인연 있는 절로 떠나 보내고 싶다고 했다.

"좀 더 좋은 환경이 있다면 이 부처님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더 좋은 환경이라면."

"매일 사시예불 받으며 청아한 스님의 독경소리를 듣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뜻 깊은 원력을 세우셨는데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김영대 사장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는 이 부처님을 도산면에 있는 용수사로 모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이 숯골로 보낸 김현승국장의 바람과, 처음 이 석불을 조성한 신심 깊은 그 일본인의 뜻을 제대로 받드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이 부처님을 모셔 가셔서 잘 섬겨 주셨으면 합니다."

며칠 뒤 우리 일행이 용수사의 원행 스님을 모시고 갔을 때 김영대 사장은 그렇게 담담하게 말했다.

"부처님을 편하게 모시면 김사장님의 사업도 잘 풀릴 것입니다."

원행스님께서는 한일 우호라는 거대한 원력을 세운 김영대사장에게 그렇게 화답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원래 이 부처님을 조성한 그 일본 선주도 이 부처님을 절에 봉안 한 후 사업이 불 같이 일었다고 합니다. 그 후 모은 것을 모두 부처님을 위해 희사했으니 극락에 있으면서 오늘 저희들을 보내어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잘 봉안하면 신심 있는 이들이게 재복을 열어주는 부처님이 될 것 같습니다."

김영대 사장의 영지에서 석불을 본 원행 스님은 매우 흡족해 하셨다. 조성한지 그리 오래된 부처님은 아니지만 그 일본인 선주의 장한 혼을 기려준다는 의미에서도 모셔오는 것이 좋지 않게냐며 며칠 후 기별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이 흐른 2015년 6월6일 원행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봉행스님을 모시고 가서 석불을 좀 모셔와 달라고 했다.

현재 숯골 김영대 사장의 영지 고옹에서 용수사로 모셔온 석불은 미륵전 옆 노상에 모셔져 있다.

용수사에 옮겨진 석불

"한일 우호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시고 나서 훨씬 훤해지셨습니다."

새롭게 모셔놓은 석불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아진 김영대 사장의 한마디였다. 옆에서 보니 부처님의 환한 얼굴만큼이나 김영대 사장의 얼굴도 여름 꽃처럼 만발하고 있었다.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저 한일 우호 부처님의 모습이 지금보다 더 환해질 것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전향적 역사의식을 통해 손을 잡고 미래로 나아가야 서로에게 살길이 열립니다. 이 부처님을 한국 절에 시주한 일본인 선주의 고귀한 뜻만 알아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서로를 외면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루빨리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려면 우리나 일본인이나 이 부처님에게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원행스님의 이 일갈(一喝)이야말로 이 부처님이 용수사로 간 까닭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