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우리들의 발자취

안동보훈지청장 김호열

8월의 막바지 여름 햇살이 대지를 달구고 있다. 창 너머로 안동시내를 흐르는 낙동강 산등성이에는 짙은 녹음이 우거져 산은 더욱 푸르다. 지난해 추운 겨울과 짧은 봄은 어느새 지나가고 여름 더위로 땀이 줄줄 흐르고 있으니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이 유수(流水) 같이 화살 같이 지나간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듯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되고, 또 예순, 일흔 살이 되고, 모두들 자신의 삶을 뒤 돌아 보면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의 흐름이 모여 한 개인의 삶이 되고, 개개인의 삶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고 한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이러한 희생이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 주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는 36년이라는 긴 세월 나라가 주권을 잃고 일제의 잔혹한 탄압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순국선열들이 있었고, 식민지에서의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이후 6.25전쟁, 4.19혁명, 5.16과 12.12 군사구테타, 7~80년대 민주화 운동, IMF사태 등 역사의 소용돌이가 끊이질 않았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희생한 자가 국가유공자이며 그 유?가족이 보훈가족들이다.

세월의 흐름은 어김없이 이들 보훈대상자들도 비껴가지를 않는가 보다. 한때는 국가의 주역으로서 젊음을 바쳐 용감히 적들에 맞서 총칼을 들기도 하고, 또 독재 권력 타도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기도 한 이들이 이제는 대부분 80대의 고령으로서 역사의 뒤안길에서 몸과 마음의 깊은 상처를 홀로 곱씹으며 외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특히 안동시를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 8개 시군을 관할하고 있는 우리 안동보훈지청 관내에는 젊은 자녀들 모두 도회지로 나가고 노부부나 홀로 살고 있는 독거 보훈가족들이 더욱 많이 살고 있다. 요즈음 농촌지역에 노인세대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비단 보훈가족뿐만이 아니다. 더 나은 생활과 일자리를 찾아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도회지로 떠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1월 부임한 이래 틈나는 대로 보훈대상자 가정을 방문하여 본다. 어떤 유공자는 6.25전쟁 때 팔과 다리를 잃은 채 80노령에도 혼자서 살고 있고, 어떤 노부부는 바깥출입도 할 수 없어 방안에서만 생활 하는 등 집집마다 삶의 아픔이 없는 집이 드물었다. 이들 보훈대상자를 위하여 보훈처에서는 ‘보훈도우미제도’를 운영하여 각 가정을 방문 일상생활을 돕고 있다. 보훈도우미들은 밥도 지어주고 세탁도 하며, 때로는 병원까지 동행하기도 하고, 찬거리를 사다주는 등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가정부가 되고, 함께 이야기 하는 벗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실시하고 있는 각종 보훈정책이 한단계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올해로서 광복이 된지 62년, 6.25전쟁이 일어 난지 57년이나 경과되었다. 30년을 한 세대로 치면 두세대가 지난 것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는 과거의 먼 이야기, 흘러간 옛날의 역사로 간주되어 보훈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지만, 우리들 주위에는 아직도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이 일부 생존해 계시고,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들도 30여만명이나 되는 살아있는 역사다.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국가유공자를 예우하고 존경하며 보훈가족에 대한 지원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러한 보훈의식이 국민들 하나하나의 가슴속에 살아 움직일 때 진정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선진국이 될 것이다.

지난 8월 10일에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구 협동학교 부지)에 세워져 개관을 하였다. 이 지역 출신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충절을 기리고 후세를 이끌어 갈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크게 활용될 것이다. 우리의 발자취인 민족의 역사와 함께 보훈에 대한 국민교육이 사회 각 분야에서 적극 이루어지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