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공(比安公) 구택(舊宅) -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211호(1989. 5.29)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24-3

서수용/한국고문헌연구소 소장

비안공(比安公) 구택(舊宅)(55.0×38.0cm)                                                        Oil on Canson Paper

비안공 구택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비안공(比安公) 김삼근(金三近:?~1465, 세조11)의 옛집이다.

'구택(舊宅)'이란 칭호는 '종택(宗宅)' 또는 '종가(宗家)'에 대한 겸칭(謙稱)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이 집은 안동 김씨 안동 소산 입향조의 제일 큰집이기 때문이다.

이 집은 비안공의 둘째 아들인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태어난 뒤인 1465년 경에 지어졌다 한다. 비안공으로 향중에 알려진 김삼근(金三近)은 자신의 호를 사은(謝隱)이라 한 점으로 미루어, 그는 벼슬 보다는 자기수양과 후진양성에 뜻을 둔 인물이 아닌가 한다.

김삼근은 세종1년(1419)에 생원시에 합격했다. 그는 안동고을에서 세 번째로 생원시에 합격한 인물이다. 그의 아들 보백당 김계행은 여덟 번째였다. 이때는 안동의 저명한 씨족인 안동 권씨의 경우도 아직 초시 합격자는 배출하지 못했던 이른 시기였다.

비안은 오늘날 경북 의성 지역의 고을로 지금도 비안면(比安面)이 있다.

비안현은 세종3년 안정현(安貞縣)과 비옥현(比屋縣)을 통합해 현의 명칭을 안비현(安比縣)이라 개칭했다가 2년뒤에 다시 비안현(比安縣)으로 고치고 현청(縣廳)의 소재지도 안정(安貞)에서 비옥(比屋)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비안공의 안동고을 선배로는 안동 권씨의 큰 조상인 판서(判書) 권인(權靷), 진성 이씨 안동 입향조인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 풍산 류씨 하회 입향조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 흥해 배씨의 큰 조상인 판사복정(判司僕正) 증참판(贈參判) 배상지(裵尙志)가 있고, 이웃한 가일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안동 권씨로 퇴계의 처조부이기도 한 참판(參判) 권주(權柱)보다는 선배였다.

비안공 구택은 안동 김씨가 안동 소산에 입향 해 지은 첫 터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집은 그런 입향의 의미에 더해 안동 김씨의 큰 조상이 된 인물이 태어나고 성장한 성스러운 곳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이 집에서 태어난 김삼근의 맏손자인 학조대사(學祖大師)는 세조 당시의 고승으로 대장경을 간행하는 등 불교를 일으키고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둘째손자인 김영전도 이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종 때에 공신녹권을 하사받고 합천부사, 사헌부 감찰 등의 직을 지냈다.

이 집은 건축 당시에는 아주 웅장한 규모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전설의 압권은 이 집 기둥이 싸리나무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충남 공주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 쌍계사의 싸리나무 기둥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데, 절집에서 주로 사용되었다는 싸리나무 기둥을 민가에 적용해 지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다만, 나무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절집의 싸리나무 기둥도 그 성분을 분석해보았더니 싸리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싸리나무가 기둥 굵기로 자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오래전부터 절집 기둥이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민간에서 전해오는가? 손가락 굵기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나무가 기둥 크기로 자랐다는 것은 신비감을 더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이다.

'사리함(舍利函)을 만든 나무'라는 것에서 그 유사한 발음인 '싸리'가 나왔다는 견해도 있다. 불가에서 사리함은 경배의 대상이며 신비의 극치인 물품이었다. 당연히 그러한 사리함을 만드는데 사용될 나무는 고급수종에다 최고급 재질을 지녀야 했음은 자명하다.

이러한 견해를 따른다면, 그 전설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비안공 구택을 지을 때 최고의 목재를 사용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여하튼 그런 정도의 좋은 목재를 사용해서 격조 있게 지은 집은 그 규모 역시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후대에 이 집을 계승하고 이 집을 발판으로 성장할 자손들에 대한 깊은 배려였을 것이다.

이 마을 고로(古老)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초 이 집은 지금도 그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집 앞 석물로 된 축대의 웅장한 규모에 걸맞게 지어졌다 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 집이 비록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중건을 거듭하는 동안 현저하게 원형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다.

비안공 구택에서 이 집이 이어진 연조를 실감할 수 있는 곳으로 사당을 들 수 있다. 비안공 구택으로 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는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당은 고풍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는데, '정덕(正德)11년(중종11, 1516)'이라고 쓰인 기와장이 나란히 처마 끝으로 그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이를 근거로 보면, 이 사당 건축물은 오백 년 가까운 연륜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집은 안동 소산 마을에서도 당호가 있는 집으로 통한다. 당호는 돈소당(敦素堂)이 있다. 이 집은 안동 김씨 집성촌인 소산마을의 가장 안쪽인 소요산(素耀山) 산기슭에 터를 잡아 남서향(南西向)으로 지어졌다. 돈소당은 비안공 구택의 당호(堂號)로 쓰이고 있는데, 당호는 비안공으로부터는 11대손이고 비안공의 둘째 손자인 감찰공(監察公) 영전(永銓)으로부터 9대손인 김언행(金彦行)이 그 주인공이다.

동야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이 남긴 시문집인 동야집에 보면 '현감공 종가 상재(縣監公宗家尙在) 즉 '현감공의 종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 뒤 '지금은 김언행이 집을 지키고 있다(今金彦行)'고 기록하고 있다. 현감공은 바로 비안현감을 지낸 김삼근을 말한다.

돈소(敦素)란, '세덕돈소(世德敦素)'의 의미로 쓰였는데 '세덕(世德)이 수양에 힘씀에 있다'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돈(敦)'이란 글자를 보면 우선 돈목, '돈후(敦厚)'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돈목(敦睦)'이란, 정이 두텁고 화목(和睦)함이고, 돈후 역시 돈목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인데, 인정(人情)이 두터움, 또는 친절(親切)하고 정중(鄭重)함을 나타낸다. 돈(敦)이라는 글자가 지닌 이러한 의미를 바탕으로 '소(素)'라는 글자가 더해졌다. 이 글자는 마을 이름으로 쓰일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안동 김씨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 옛 선비들은 '소(素)'라는 글자를 만날 때마다 먼저 공자의 말씀을 떠올렸다.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篇)에 "그림을 그려 문체를 이루는 일은 하얀 바탕의 비단이 마련된 뒤에야 가능한 것이다.[繪事後素]"라는 공자의 말씀이 실려 있다. 작품을 만들자면 먼저 하얀 비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자기 수양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본말(本末)과 선후(先後)의 문제다.

권 화백의 화실에서 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때가 많았는데, 그는 새로 들여놓은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를 늘어놓고 그 깨끗한 바닥에다 다시 유화물감을 도포(塗布)해 말리곤 했다. 대량으로 제작된 표면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다시 다듬질 하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화백의 문하생인 '낙청헌(洛靑軒)' 출신 작가들의 모임으로 우리나라 미술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후소회(後素會, 1936년 창립) 역시 이러한 정신에 기반을 둔 작가들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정신은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들에게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권 화백이 했던 근자의 작업은 전래의 후소(後素) 정신(精神)으로 설명할 때 보다 쉽게 이해된다. 중견 서양화가인 그의 시조인 권태사 역시 나말 여초에 안동을 대표한 지도자로서 소산에 세거하고 있는 안동 김씨들의 시조인 김태사와 함께 자기수양을 통해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나라에 충성했던 주인공이었다. 권 화백은 화가이기 이전에 이러한 후소의 정신을 충분히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다.

소산 마을의 돈소당은 소(素)라는 글자를 빼고는 설명이 될 수 없는 집이다. 이 집은 소산 입향조인 김삼근(金三近)의 고택이다. 물론 돈소당이란 당호는 김삼근의 11대손인 김언행(金彦行) 지은 것이지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학에 기반해 선택된 이 가문 공동의 지향(志向)이었을 것이다.

안동 김씨들은 김태사 당시 안동부와 마주보고 명미(明媚)하게 흐르고 있는 낙동강 강 남쪽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았다. 당시의 지명은 강정촌(江亭村)이었다. 그곳은 지금의 강남지역으로 후에 고성 이씨들이 이어서 살게 된다. 이곳에는 고성 이씨 귀래정파의 종가 별당형 정자인 귀래정(歸來亭)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뒤 확실하지는 않지만 풍산현 남쪽 불정(佛頂)마을로 터전을 옮겼다. 비안공의 아들인 판관공 김계권의 부인인 예천 권씨가 아들 다섯을 데리고 서울 장의동(壯義洞)으로부터 풍산 서쪽 금산촌(金山村)으로 옮겼는데, 이곳이 바로 소요산 기슭인 현재의 안동 소산마을이었던 것이다.

금산촌이라는 당초의 지명은 후대인 청음 김상헌에 이르러 금(金)이라는 글자가 화려하다는 이유로 소박(素朴) 또는 질박(質朴)을 뜻하는 '소(素)'자로 동명(洞名)을 고치게 된다. 

작품에 보이는 집 앞의 빗돌은 문화재로 지정된 표지석이다. 표지석 옆으로는 철제로 된 문화재 안내판도 서 있지만 권화백은 이를 생략했다. 그 뒤로 비스듬하게 대문을 향해 난 계단이 보이고 그 뒤로 일자형 와가가 눈에 들어온다.

비안공구택이라고 쓴 현판은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었는데, 후손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작품이다. 당대를 대표했던 일중은 먼 조상의 유서 깊은 옛집의 당호를 쓴 셈이다. 사진 상으로 보이는 집에는 장닭 한 마리가 병아리 무리를 몰고 계단 오른편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 집에는 정면으로 작은 쪽마루가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 그 마루에 앉아 이집 종손과 말씀을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 그 분의 맏아들과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가문과 이 집의 유래와 그 면면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이 작품은 최근의 보수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모습이다. 비안공 구택은 서까래 아래로 양철로 된 물받이가 장치되어 있다. 집은 측백나무와 작은 소나무, 감나무 그리고 무수한 활엽수들이 포근하게 감싼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