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소당(養素堂), 안동 김씨 종택(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 1리 218번지)-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25호(1981년 지정)

서수용/한국고문헌연구소 소장

양소당(55.0×38.0cm)                                                                                     Oil on Canson Paper

'소(素)'라는 글자는 김태사를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들의 전가구물(傳家舊物)이다.

하룻밤만 자고나면 신제품이 나오는 요즈음 구물(舊物)은 그야말로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구물의 가치란 간단하지 않다.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현듯 자신이 살았던 곳을 찾아가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필자는 6년간 5군데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순서는, 그 고향이었던 경북 영주 1, 서울 2, 경기도 양평 지평 1, 경북 상주 함창 1곳이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학교는 서울특별시에 있는 2개교 뿐이다. 그리고 살았던 그 대부분의 집이 남의 것이었지만, 당시의 집들은 단 한 채도 남아 있지 않다. 필자가 살았던 서울 종암동 언덕에 소위 재개발로 새로선 고층아파트는 현기증마저 날 지경이었다.

남다른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다시 서울에 살고 있는 50을 갓 넘긴 필자에겐 그래서 안정된 주거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남다르다. 그래서 수백년을 한 곳에 세거(世居)하며 명문가로서의 물색(物色)을 잃지 않고 전통을 지키고 있는 집안들에 대한 존경(尊敬)의 념(念)이 있다. 종가(宗家)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안동 김씨 양소당 종택은 31세를 면면히 그 전가구물을 이어온 것이다. 그 역년(歷年)이 실로 놀랍다.  

전가구물이란 바로 전가보물(傳家寶物)과도 통하는 문자다.

소자가 안동 김씨의 전가보물이기 때문에 안동 소산의 소요산 아래에 살면서 '청소(淸素)'의 세전지물(世傳之物)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이 그분들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양소당의 중심인물인 장령공(掌令公) 김영수(金永銖, 1446-1502)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적옹(積翁)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판관 김계권(金係權)이다. 그는 음보로 의금부 도사, 사헌부 감찰, 상주 판관이 되었다. 영덕현령, 선공감 첨정, 사헌부 장령, 통례원 봉례를 거쳐 영천군수, 금교도 찰방 등에 임명되었다. 그는 특히 글씨를 잘 썼다 한다. 그의 사위에 퇴계의 제자로서 '선성삼필(宣城三筆, 예안 지역을 대표했던 세 사람의 명필)'로 필명을 크게 떨쳤던 금보(琴輔)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장령공 김영수의 묘비는 당대를 대표했던 문장가요 정치가였던 허백(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었다. 또한 비문의 글씨는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의 아들인 홍언국(洪彦國)이 썼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안동김씨연원록'에 보면 이 비문이 마모되어 개갈(改碣)이 필요했을 때 후손으로 판서를 지낸 김이재(金履載)라는 이가 퇴계 이황이 지은 글을 입수하고 봉조하 김이양의 글씨에다 우의정 김이교의 전자(篆字)로 각자한 새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풍고 김조순의 문집인 풍고집(楓皐集) 권11에 실려 있는 선조 장령공 묘갈음기(先祖掌令公墓碣陰記)를 보았다. 그 내용은 위와는 조금 달랐다.

정덕16년(1521, 중종16)에 세운 묘비는 순조20년(1820)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마모의 정도가 극심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후손 중에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김이재(金履載)라는 이가 대구 지역에서 빗돌을 마련해 옛 비석의 글자를 탁본해 비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그 글자를 판독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후손들 중 현귀(顯貴)한 이의 글씨를 받아서 일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 때 마침 후손 가운데 병관(炳觀)이라는 이가 퇴계 이황이 행서(行書)로 써둔 장령공 묘갈명 글씨와 숙인(淑人) 김씨의 행장, 승지공(承旨公) 묘갈명 1권을 제시했다. 이는 그 선조인 창균(蒼筠) 김기보(金箕報, 1531-1588)라는 이가 스승인 퇴계 선생에게 별도로 부탁해 받아서 후손들에 의해 비장(秘藏)되어졌던 것이었다. 이렇게 발견된 퇴계 선생의 글씨는 경상관찰사를 통해 서울로 전해졌고 이를 놓고 현귀한 후손들이 쓴 글씨와 비교해가며 논의를 이어갔다.

이 때 김조순은, "선생의 글씨가 참으로 좋다. 후손들이 비록 현귀하기는 하지만 누가 선생의 대현만 하겠느냐?(先生書固善 後孫雖貴顯 孰有如先生之大賢乎)"라고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마침내 퇴계 선생의 글씨로 새겨 장령공 비를 다시 세웠다. 논의를 종결했던 풍고 김조순이 쓴 글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 크다.

당시 안동 김씨는 가문에서 국정을 논의할 정도의 풍부한 인재풀을 갖고 있었다. 정승 판서는 물론 천하의 문장가뿐만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명필 역시 가문에서 넘쳐났다. 그렇게 보면,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문묘에까지 배향된 퇴계 선생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글씨가 탐탁지 않은 면도 있었을지 모른다.

퇴계 선생의 벼슬이 돌아가신 직후에 증직을 통해 영의정에까지 이르기는 했어도 행직(行職)만으로 볼 때는 자신들의 현귀(顯貴)에 비할 바 못 되었던 것도 고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당색(黨色)으로 보면 율곡 이이와 청음 김상헌, 우암 송시열 선생의 학통을 계승한 이들이 대부분으로, 영남의 안동 김씨 본향인 소산의 창균 김기보의 맥을 이은 이들과는 정서적인 면에서도 온도차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가르친 이가 당시 안동 김씨 문중의 중심이었던 풍고 김조순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현귀하다 해도 그것이 대현과 비교할 수 있는 정도이겠느냐?" "그러한 자부나 교만은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이 짧은 글 속에 녹아 있다. '양소(養素)의 도리(道理)'를 가르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심상하게 보고 있는 안동 김씨 종택 양소당에서 이러한 일화를 곱씹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안동 김씨 소산(素山) 출신 인물 가운데 퇴계(退溪) 학맥(學脈)에 닿아 있던 인물인 김기보라는 이는 장령공 김영수의 증손자다. 한양에서 태어났던 그는 혼인을 계기로 안동으로 내려와 외조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외숙인 이중량(李仲樑), 이숙량(李叔樑)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음보로 언양, 거창, 회인현감을 지냈는데 회인현감으로 있던 1586년에 장문의 진폐소(陳弊疏)를 올려서 과중한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으며 재임 중인 1588년 5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기록을 보면, 이 집은 동야(東야) 김양근(金養根, 1734-1800)이 대략 230여 년 전 지은 것이라 한다. 필자는 이 집을 보면서 양소당이란 현판의 의미를 생각했고 또 그 주인공에 대해 궁금한 점도 없지 않았다. 모두 문헌(文獻)이 부족한 때문이다.

안동부사로 재임하면서 문중 일과 청음 선생을 현양하는 일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던 김학순이란 이가 쓴 양소당(養素堂)이란 현판을 보았다. 그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동야 김양근이 지은 양소당기에 보면, '질실순고(質實純古)'로 규정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단에 보면, '창연고색(蒼然古色)'이란 문구도 보인다. 이 모두는 앞에서 언급한 전가구물의 '구물(舊物)'과 썩 잘 어울리는 문자다.

창연고색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창(蒼)'이란 글자는 푸르다, 늙다, 오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안동 지방에서 쉽게 보는 기와집의 이미지가 바로 창연고색이다. 다만 요즈음 지나치게 강도가 높고 색깔도 짙은 정형화된 기와로 복원한 와가에서는 이러한 맛이 떨어진다. 그 표현하기 어려운 쑥빛에 가까운 기와지붕의 색조가 창연 고색이다.

이번에 권 화백이 그린 양소당은 예전의 사진 한 장을 참조한 작품이라 한다. 그래서 다시 권 화백이 참조했다는 도판을 꺼내서 보니 전면 보수를 하기 전의 종택 모습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역시 그 길이 지금과는 달라 보인다. 그런데 그 모습이 더욱 정겨웠던 것은 바로 기와의 고색창연한 빛깔 때문이었다. 

필자는 평소 '양소당'이라는 당호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궁금했다. 자료에 보면, 안동 소산 본향의 문호(門戶)를 크게 열었던 주인공인 조선 성종 대의 문신이었던 장령공(掌令公) 김영수(金永銖)의 아호로도 소개하고도 있다. 조선 후기에 영남 8대문장가 중의 한분으로까지 이름났던 12대손 동야 김양근의 문집인 동야집 권7에 양소당기(養素堂記)가 실려 있다.

이 글을 읽어보면 양소당은 자신의 당호이면서 보다 범위를 넓혀 당초부터 안동 김씨 대종택의 당호로 쓰기 위해 동야 김양근 자신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족보를 보면 동야공은 부친과 아들 삼대(三代)가 모두 양자로서 종통을 계승한 이다. 종가를 상징하는 확실한 표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