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의 안동에 처음으로 '염색, 민화, 규방공예'의 발판을 구축 한 신계남(申季男·64·경북 안동시 태화동).

지난 9월 6일 서울 패션쇼를 통한 첫 만남이 마냥 아쉬워 그녀를 만나러 갔다.

단아한 한옥집 풍경, 초록색 대문이 열리자 감나무 옆 담벼락엔 사군자 한점이 정겨움을 안겨주고, 마당에 너부러진 새빨간 고추가 자연의 소리를 알리자 20년의 빛바랜 색의잔치가 천연염색의 깊음을 들려주니.

자연의 색을 그려내는 새하얀머리의 쪽빛 삼베옷을 입은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에 또 한번 가슴이 설레인다.

9남매의 장녀로 포항여중2년을 중퇴한 그녀가 천연염색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동양대  패션디자인학과 초빙교수로 천연염색의 대가로 세상에 알려진 건 주부로서 4남매를 키우던 어느 날.

아침 일찍 등교에 나서 새벽2시 무렵 돌아오는 힘든 대학준비시절을 지내는 자녀를 돌보며, 그시기를 함께 보내려 그녀도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서예를, 나중엔 사군자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려내는 것으로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어 염색을 시작하게 되고, 찍어내는 화학염색에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염색찌꺼기가 다시 거름으로 쓰이는 환경친화적 염색방식에 매료 돼 자연 재료에서 색을 발취하기 위해 ‘자연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게 되고, 이내 그녀의 천연염색 작품들이 하나 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세상 밖으로 수줍은 인사를 한 그녀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며 세상을 놀라게 하고 끊임없는 찬사속에 이내 1994년부터 우리 옷 및 전통의상 공모대전에 시상, 이듬해 경복궁 전시회를 열며 그녀의 작품들은 보이는 데만 그치지 않고 거장으로서의 길로 질주한다.

"뜻밖의 큰상이 첫 기쁨을 안겨줬고, 최고의 보람 이였다."
1997년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 받던 때를 떠올리며,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녀.

출품하는 작품마다 수상이 이어져 1999년 전문성을 인정받아 동양대 패션디자인과 강단에 서게 되고 지난 2001년에는 '제1회 여성부 신지식인상'을 수상.
현 동양대 초빙교수이자 신계남 자연문화체험관고문 이라는 천연염색의 거장의 대열에 우뚝 선다.

그녀에게 천연염색과 규방공예를 전수받은 전문가들이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그 후진들이 또 다른 양성자들을 일궈내 유교문화의 도시에 뿌리를 내렸음에도 "나는 안동의 자랑이 아니다." 며 겸허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
내가 안동인임에 되려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내 인생에 있어 천연염색은 "젊음과 용기와 즐거움 그 자체다."

"첫 강단에 서던 해부터 후진들에게 우리의 옛것을 알리고자 연하장에 사군자와 사자성어, 지금은 민화를 이용한 연하장을 과제로 내고 있다."

그녀는 제자들이 만들어 낸 1999년부터의 연하장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고, 그 스크랩들을 요목조목 꺼내 보였다.

"나를 '할머니교수님'이라고 부르던 후진이 있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녀석인 모양이다.
버르장머리 없던 그 학생에게 천연염색의 열정을 전수하며, 관심과 애정을 보였더니
"생각지도 못한 재능과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하루가 다르게 나를 놀라게 했다."
그 학생이 군대에서 보낸 편지를 더듬으며 그를 떠올리는 그녀의 모습은 가르치기에만 급급한 교수님의 모습이 아닌 모성으로 자식을 어루만지는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강의시간에 내 모든 것을 내 놓는다."
다른 전문가들과는 사뭇 다른 그녀.
요리의 전문가들은 그 비법을 쉬이 발설하거나 꺼내 놓지 않지만, 그녀는 후진들에게 자신의 모든 지식과 비법을 빠짐없이 내 놓는다.

허나, 요리에는 손맛이 베어야 제 맛이 나듯 천연염색은 깨달음이 필요한가보다.
자연의 색을 빨리 보고픈 맘에 단시간에 색을 만들어 천연염색의 깊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로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그녀 또한, 그 시절이 있었기에...
자연의 색을 꺼내어 사람들의 찬사를 끌어내기까지 수많은 착오와 번복의 시간을 거쳤기에. 계절에 따라 피는 꽃과 풀들의 색이 각기 다름을 깨우치고 일상의 재료들에서 색을 발취해 그 수많은 시간 힘들 줄 모르고 달려온 그녀이기에 간절한 것이리라.

집안 한 켠에 마련된 전시장을 공개하며 그녀는 "천연염색은 자연이다."고 말한다.

색을 만들어 옷감에 물들이고 100마리의 나비를 수놓은 2002년 의장등록 된 백접도(百蝶圖)를 비롯한 전시장에 차곡차곡 정리된 토란, 도토리, 쑥, 칡, 쪽, 홍화, 감, 울금 등의 두루마리들에 흘러간 세월의 장인정신으로 그을린 그녀의 손이 만들어내는 한복, 커텐, 넥타이, 가방, 방석 등에 그림이 더해지니 이것이 자연과 한 거장의 혼이 숨쉬는 박물관이 아닌가. 자연속 경관에 들뜬 마음이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지금은 감무늬염색의 특허등록 신청과 책자발간에 들어간 그녀의 계속되는 전진.

글을 옮기며 그녀의 일대기와 현재까지의 여정 속을 다시금 뒤척여보지만 두 번째 인연의 향기에 심취돼. 그녀에게선 딱히 프롤로그의 적합점을 찾아 내기가 힘들었다.

천염염색에 대한 그녀의 열정 속에 프롤로그가 없었듯이.
에필로그가 없는 그녀의 계속되는 행진과 영원함을 고대해 본다.

               <관련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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