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을 국회의원이 석고대죄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공천에 떨어졌으면 조용히 짐 사들고 서울로 갈 것이지 그 꼴이 무슨 청승이냐며 힐난하기도 하고, 무엇을 얻어내기(장관자리)위해 저러고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 많이 벌어두었으니 무슨 걱정이냐는 말은 그래도 애교로 봐 줄만 하다.

그는 과연 무엇 때문에 거적을 깐 자리에 흰 삼베옷을 입고 석고대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공천을 받지 못해 죄송하고, 주민들을 잘 섬기지 못해 송구하다."는 그의 고백은 백번 맞는 말이다. 도의원을 거쳐 국회의원 3선을 했던 권오을 세상에서 시민들은 자존심에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51%승리에 함몰된 정치는 분열이라는 필연적인 고리에 걸렸고 악순환을 반복했다. 승리에 필요한 개체(個體)를 확보하는데 있어 철학의 부재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간(離間)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옛사람을 쉽게 버리고 새로운 사람만 찾는 과정에서 신·구간 갈등을 불러왔고, 오로지 쉬운 길만의 추구가 결국 옛 동지들로부터 유탄을 맞고 쓰러지는 결과를 낳았다. 박약(薄弱)한 삶의 뿌리는 가슴이 없고 머리만 있다는 세간의 평가와, 선정성을 선점하지만 정의감이 없다는 말로 회자되어 여당 4선의 길에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된 것이다.

그의 석고대죄는 정확하게 이것에 대한 눈물어린 참회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따가운 시선을 변명 않고 받아드리겠다는 낮은 자세다.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자신의 요구가 무참하게 거절된 것에 대한 통한의 반성인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이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고 국민들은 열광했다. 떠나기 전까지 그렇게 욕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멋있다는 말을 한다. 슬리퍼를 끌고 동네 구판장에 앉아 담배 한 개 피 피워 물고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우리는 참 으로 멋있다는 생각을 연발했다. 그러나 그러한 대통령을 우리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심신풀이 오징어땅콩 씹어대고 까먹듯 욕을 해댔다. 딱히 뭐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밉다는 것이었다. 말을 품위 없게 해서, 열린 우리당 출신이어서 등 등, 겉과 속이 다 충족되지 않거나 본질적인 문제와는 동떨어진 막연한 말들뿐이었다.

그가 실질적으로 통합의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분열의 정치를, 반목을 추스르려고 노력하기보단 적절한 이용을, 실리외교보단 이념외교에 치중에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입지를 좁혔다든지, 현실과 동 떨어진 스웨덴식 복지개념을 도입해 경쟁의 구도를 약화시키고, 반 기업 정서를 확산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 모른다. 코드정치에 함몰되어 다양한 인재풀을 활용하기 보단 자기 사람 심기에만 열중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가지는 버리고 줄기만 삼키듯 노무현식 정치는 큰 틀에서 많은 유익한 것들을 양산하고 뿌리를 천착시킨 것도 사실이다.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노대통령에 대해 우리가 환호하는 것은 그의 작은 실책들은 묻히고, 큰 흐름에서 긍정으로의 국가를 운영한 공로에 대한 동의인 것이다.

권오을의원의 석고대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는 뭔가가 빠져있다. 이렇다 저렇다는 시류에 휩쓸려 미움만을 쏟아내고 있지, 잘못을 청함에 있어 용서라는 아주 기본적인 대답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석고대죄를 사시(斜視)로 바라볼 그 어떤 근거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고, 자신의 조직을 새로운 한나라당 공천자에게 깨끗하게 인계했다. 여당 4선을 발판삼아 고향과 동지들에게 진 빚을 갚고,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서겠다던 야심찬 포부를 말하던 때의 그가 아니다. 그는 빈 몸이다. 권력역학구도에서 밀려나 정치에서 제거된 처량한 몸이다.

장관 한자리, 공사 사장자리를 얻어 건지려고 저러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차마 입에 담을 말이 못된다. 우리 스스로 정신의 빈곤을 탓할 일이다. 그걸 정말 마음속으로 노렸다면 석고대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용히 보따리 싸들고 권력자에게 줄을 대면 될 일이다. 이미 우리가 반복 경험했던 것처럼 그도 떨어진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동을 등지면 그만이다. 어느 전직 국회의원 부인의 말처럼 안동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고, 이런 일들은 전작(前作)에 비추어 잔인한 헤어짐이 되었다.

우리가 보내고 있는 그에 대한 냉소는 이런 경험들 때문에 깊게 뿌리박힌 피해의식일지 모른다. 공격성과 방어기제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우리는 그의 아름다운 이별의 손짓마저 잔인한 헤어짐 이냥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뒤 이것저것 돌아보지 않고 노여움에 휩싸여 우리를 외면하던 눈초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그에게 보내고 있는 우리의 냉소는 그가 받아야할 몫이 아니다. 다 버리고, 다 잃고서도 도망가듯 고향 안동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우리의 뭇매를 맞고 있는 그에게 진정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가 석고대죄를 청했으니 이젠 권오을의 죄명을 논할 때다. 그는 무슨 죄를 지어서 국회의원 3선이라는 비중 있는 몸으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서두에 밝힌 그의 죄목은 스스로 청한 것이다. 하여, 교양과 상식이 살아있고, 이치와 도리 명분을 논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정신문화의수도 안동인 이라면 마땅히 이를 논증하고 재판해야 될 일이다. 혹자는 "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누구에게 한 일이 없다는 말인가. 누군가 개인적으로 청한 청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은 국회의원 직분의 성실성으로 보았을 때 나물랄 일이 못된다. "안동에 한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전국적으로 다른 도시는 다 살만한데 우리만 못 산다는 말인가? 유독성을 고집하여 그를 질타할 만큼 어떤 통계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가. 오히려 그가 국회의원으로 있는 동안 매년 안동시의 예산이 몇 백억씩 늘어났다는 것은 일천한 환경을 이용해 최대한 살 길을 도모했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무작정 가해지는 집단린치의 이면에서 악마성을 읽는다. 이성과 정도가 사라지고 니편 내편만이 존재하고 이익의 계량만이 기준이 된다면 그를 욕해도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경모할 수 선조들에게서 배움을 청했고, 그것의 실현이 뒤로 미룰 일만은 아니라면 막연한 반대적 감정으로 그를 또  한번 죽이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자학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우리에게 이 시점에서 환호를 받는가? 그가 그동안 우리가 막연하게 미워했던 감정을 해소해 주었는가. 잘못했다는 기자회견을 했는가. 용서를 구했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고속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갔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잔잔한 열광을 하는가? 그는 단지 권력자의 일반적 형태를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췄을 뿐이다. 권력자도 우리처럼 살 수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지금껏 그 어떤 국회의원이 자신을 버린 지지자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적이 있었는가. 대한민국 정치역사에서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있었는가. 본질적인 측면에서 권오을의 의정활동 12년은 대한민국 최고였다. 이걸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질과 핵심은 오직 이것뿐이고 그의 대한 단죄의 근거와 판단 또한 이것뿐이다. 권력카르텔은 사족과 겉 가지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회의원을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제거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자산임이 확인되어도 미래의 정적은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이런 곡절을 두고 우리는 슬퍼해야 되나, 웃어야 되나. 우리마저 권력카르텔의 처사에 일면 환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참으로 기이할 뿐이다. <시인작가/최성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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