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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시 - 2009-01-06 10:24:46
'토계에서 청량까지'
권준, 퇴계오솔길 한문화 기획전
 

중견화가 권준 선생이 '퇴계오솔길'의 사계절을 가을부터 익년 여름까지 이어가며 주변풍경을 화폭에 담고, 매월당문학상 시나리오 부분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 최성달이 권화백의 그림을 글로 야심차게 표현한다. 이번 기획연재는 2009년 1월에 시작하여 매달 초순과 보름에 연재되며, 1년간 계속된다.

 작가 권준이 퇴계라는 인물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동안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방향선회를 주문했다.

그림의 소재로 위대한 사상가이며 현자인 인물의 선택은 왠지 모르게 작위적인 냄새가 났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퇴계 이야기를 해서 무얼 하자는 것인가 싶었다.

너무 잘나서 식상하고, 가만히 있어도 교훈적이어서 도무지 매력적이지 못한 이 남자를 붙들고서는 되레 수렁으로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회화에서 주류성은 아무리 위대해도 아류이고 구색이 그럴듯하게 갖춰진 그들만의 잔치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다. 그것으로 작가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권위에 대한 덧칠 뒤에 무수히 뒤따를 정신의 황량함을 감당하지 못한 권준의 영혼이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닐 것 같은 환영이 보였다.

막말로 권준을 저 밑바닥의 인생들 곁으로 한사코 등을 떠밀지 않고는 그림이고 인생이고 이것으로 끝장이다 싶었다.

권준과의 어깃장은 그것만이 아니다. 첫 대면 때 그의 눈에 비친 오기의 서릿발은 성성하기까지 했다. 오만한 내 혓바닥이 감춰둔 그의 콤플렉스를 여지없이 건드렸을 때 독 품은 자책은 오히려 간담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 서늘함, 그래, 묘한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순간, 그의 눈에서 살아 있는 충만한 기운을 본 나는 그 길로 단번에 '권준론'을 휘어 갈겼다. 그리곤 기꺼이 그림문전에서 걸식하는 식객이 되기로 작정까지 했으나 태생적으로 전일(全一)하지 못하는 내 영혼은 어찌된 영문인지 자꾸만 권준의 주변을 어지럽게 흩어놓곤 했다.

그 막막함과 무작정의 열정이 여운처럼 떠돌던 지난해 10월 중순 어느 날 이었을 것이다. 

UGN경북뉴스 피중찬 편집인의 입을 통해 전달된 '퇴계 오솔길'이란 말은 권준의 가슴에 숨겨둔 불을 지피기에 넘치고도 남았으리라.
이는 실로 우연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우연과 우연의 마주침이었다.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의 불길처럼 억누름을 벗어난 한 사나이의 대자유의 포효 앞에 그 누구도 막아서지를 못하는 거침없는 질주, 바로 그것이었다. 단번에 여장을 꾸린 우리 세 남자는 그 길로  열 다섯 번의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신기한 것은 뭔가 미편하던 내 마음이 첫날이후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들을 따라 나선 길. 그 길에서 난, 길 위에서 길을 묻고, 길을 찾고, 끝내는 길을 연 퇴계와 대면했다. 권준이 종일 칼을 갈며 내게 주고자 했던 바로 그 해답. 두 사람은 무연함으로 웃자라기만 한 철부지에게 묵언 한 수의 길을 열어 보인 것이다.
우리가 첫날 산길로 고산정을 거쳐 농암종택에 이르기 위해 산 정상에 오르자 퇴계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미천장담과 경암이라는 시가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정제된 나무들을 쌓아놓은 것으로 보아 전망대가 들어설 모양이었다.

안동시가 추진하고 있는 퇴계 녀던길 생태탐방로는 청량산과 마주하고 있는 건지산(559)의 일부인 3km의 구간을 오솔길로 만드는 것이다. 고산정 건너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미천장담- 경암-학소대-공룡발자국을 지나 농암종택에까지 이르는 숲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주변 풍광이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한 장관이어서 택리지를 쓴 이중환의 말이 과히 명불허전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도산서원에서 퇴계가 갑자가 전망대까지 날아와 농암종택까지 갔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는 미진함을 느낀 우리 일행은 피중찬 편집인의 제의로 답사여행을 전면 재조정했다. 아예 처음부터 퇴계가 걸어갔던 길들을 모조리 탑방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며칠 후 두 번째의 답사는 도산서원 강섶에서 출발하여 하계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모든 길은 피중찬 편집인이 안내를 했다. 그는 이곳 지리를 한 눈으로 꽤 뚫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 때 어려웠던 시절을 여기서 몇 년을 보냈단다. 속절없이 세월만 보내던 막막한 한 때의 삶이 겹쳐진 탓인지 발걸음이 무거워진 만큼 비워졌던 생각들이 채워지고 또 비워지고를 반복했다.  늘 한결같지만 길에서 얻어 건진 말들은 살이 되고 피가 된다. 그들이 산과 강을 사랑함에랴.

새기면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도 남음이 있으리니 노장들과 함께 다니는 답사는 추억여행이라는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애정이 추억으로 넘어갈 때의 인생이 가장 아름답듯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수한 반추꺼리를 덤으로 줌으로써 세상의 빛으로 환원되는 명멸하는 것들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는 행복할 지어다.

셋째 날, 한쪽 다리가 망가진 육신을 질질 끌다시피 하고 권준은 이 길에서 무엇을 보고 찾았을까? 아닌 게 아니라, 답사 내내 그가 골몰한 건 길이라는 화두였다.

평생 화마처럼 끌어안은 붓질이 이 길에서 완연하게 피어나고 완성되기를 빌고 빌었을 것이다. 이날 우리 일행은 그전에 멈춘 길에서 길을 다시 열어갔다. 하계에서 왕모산성을 병풍처럼 둘러친 강 길을 스케치하다가 걷고, 다시 멈춰 풍광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 다음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도산서원에서 이번에는 반대쪽의 월천서당에 이르는 강섶을 따라가는 동안에도 길과의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안 것이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배운 것이 있다.

권준이 던진 '바로되먹임'이란 숙제를 풀어낸 건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었다. 권준이 누구인가?

중앙일보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리고 한 해도 그르지 않고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정신의 원류에 천착한 것은 '바로되먹임'의 효과를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확성기 곁에 마이크를 두면 소리가 증폭되는 건 바로되먹임의 효과 때문이다. 증폭된 소리의 요동이 격심해지면 기존의 구조는 파괴되지만 자기조직화 과정을 통해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출현하는 것이다. 권준의 노정은 식상함에서의 새로움의 창조, 버려진 것에서의 보물의 발견, 큰 보물에 대한 인식의 환기(해체)를 통한 새로운 미학의 창출, 말하자면 바로되먹임의 착안이다.
기실, 기록 문화로써 그리기의 시도는 오랫동안 화가에게 기피의 대상이었다.

고대 미술이 주술의 표현이라면 정신이 확장된 인간에게 중세의 미술은 읽기의 대용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장려되었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 그림만이 이러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맹률이 교육열로 일거에 제거된 이후부터 그림과 글씨는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써의 역전현상을 맞게 된다.

기록문화의 주체로써 그림은 문자에게 주인자리를 넘어주고는 영영 그 위치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림은 오로지 관상, 고급 기호품으로 전락, 민중으로부터 조차 소외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것은 단언하건대,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부하는 안동에서 문자의 확대재생산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비해 그림이 도외시된 배경일 것이다.

권준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

문화의 토대가 녹록하게 구축되어 있는 안동이지만 유독, 회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 절망한다. 이러한 실정이 비록 조선조 유교문화가 문자중심으로 흘러온 탓이었다고 해도 그림을 통한 문화의 확대재생산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문화도시가 될 수 없고, 이는 한 편으로 화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안동은 지금이라도 문자 문화 확대 일변도 정책에서 문자문화를 회화 문화로 이식하는 2차적 문화 사업에 지원과 눈길을 돌림으로써 형식적 균형이라도 잡아나가야 정신문화의 수도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권준의 '요지부동 안동문화 부활론'이다.

권준 '퇴계오솔길 한문화 기획전'은 이러한 명징한 메시지를 안고 전국과 외국 전시회를 염두에 두고 출발한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용하다고 믿는 선비정신이 줄 수 있는 유익함을 그림을 통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미학을 포기하지 않고도 기록 문화로써의 그림그리기의 전형과 모델을 세우겠다는 의도된 목표가 달성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가을에 붓질을 시작했으니 지금 보내고 있는 겨울과 봄, 여름을 지나 다시 가을이 오면 그의 정신이 녹아지고 배여든 알짜배기 알토란같은 자식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2009-01-06 10:24:46 / UGN 경북뉴스(ugnews@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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