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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화가 권준 선생이 '퇴계오솔길'의 사계절을 가을부터 익년 여름까지 이어가며 주변풍경을 화폭에 담고, 매월당문학상 시나리오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 최성달이 권화백의 그림을 글로 야심차게 표현한다. 이번 기획연재는 2009년 1월에 시작하여 매달 초순과 보름에 연재되며, 1년간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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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참 우연찮게 일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권준, 퇴계오솔길 한문화 기획전을 하기 전 권준이라는 화가를 잘 몰랐다. 궁금하여 한 번 찾아 본 것이 이 기획전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억하기로 당시 권화백은 귀향한지 10년 쯤 되었고, 상경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눈 화가가 없는 척박한 땅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버거움이 되어 가슴을 짓누를 때 그와 만났다.
꺼져가는 온기에 불씨를 되살린 건 ugn경북뉴스의 피중찬편집인이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우리 두 사람에게 퇴계오솔길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골몰 하도록 만들었으니 어찌 보면 이 작업의 최고 공로자는 피 편집인이다. 게으른 나에게 글 독촉을 해가며 무사히 기획전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이끈 공로도 역시 그의 몫이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이 기획전의 지면은 내가 하고 싶은 소리를 할 수 있도록 마당을 깔아준 측면이 있다. 그 때문에 독자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지면을 빌어 나이가 들수록 아이디어 더욱 더 번뜩이는 그가 다하지 않은 열정으로 안동의 문화를 확대하고 재생산하는데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권화백을 만난 건 한마디로 행운이었다.
그의 붓질이 있었기에 취할 수 있었고 동(動)한 나머지 졸필이지만 이만한 글이라도 쓸 수 있었다고 자위한다. 화가가 혼을 불어넣은 그림을 맨 처음 볼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난 뒤의 감흥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떨림이다.
고백하자면 그가 그림을 완성하고 난 뒤 맨 처음 나에게 그림 보러 오라고 전화라 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 마치 그 그림을 나를 위해서 그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땀과 물감 냄새가 뒤섞인 묘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난 매번 몽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과정이 기다림을 요구하는 시간이기에 설레임이라며,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것은 또 다른 희열이다. 8개월간 권화백은 나에게 이러한 기쁨을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그렇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능력 밖의 일이라 필경 난,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실 돌이켜 보면 붓질하는 사람에 취하고 선과 색으로 형상화한 그림에 취하다 보니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지만 참으로 운이 많이 따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작업의 나아갈 방향을 두고 의견이 상충할 때마다 물러서지 않은 후배가 한없이 괘심하고 고약했겠으나 그 괄괄한 성질 죽여 가며, 그래그래 오냐오냐 기 키우고 살려준 그가 한없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면서 지난 8개월 간 우리는 5백 년 전에 살다간 퇴계라는 인물과 그 인물이 걸어갔던 퇴계오솔길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그 유무형의 유산을 그림과 그 그림을 비평한 글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태동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하며 나날을 달려왔다.
그 야무진 포부와 골몰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름은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시도하며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그 심판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박물관에서 9월27일부터 10월4일까지 이제껏 ugn경북뉴스의 화면을 통해 발표된 그림들을 모은 전시회가 열린다. 아울러 27일 하루는 출판 기념회도 함께 개최된다. 그때 많은 분들이 찾아와 질책과 격려를 많이 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 노력해라. 참 잘했다.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는 공론의 장이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아래의 권준론은 그 전에 쓴 글이지만 여기에 덧붙이는 것은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거재를 했다. 이 글을 읽어놓으면 전시회 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댓글로 많은 사랑과 격려를 보낸 준 독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울러 그림과 글을 싣느라 고생한 신윤미, 피현진, 황준오기자와 그들을 지원해준 이기덕 부장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작가 권준론
작가 권준의 담채(淡彩)나 소묘(素描)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선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아마, 훈련과 연습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이러한 타고난 재능 때문에 일찍이 신동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색채로서 인물의 깊이를 드러내어야 하는 인물화에서도 선의 미학은 여전히 살아있다. 화폭에 펼쳐진 선은 분출하는 그의 정신을 담고 있으되, 안정되게 내재되거나 표출되어 있다.
권준은 표현의 목적을 위해 과장을 동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다. 형태의 생략을 통해 작품을 깊이를 드러내기를 즐겨한다. 그의 미학은 한마디로 감춤의 미학이다.
그의 이 같은 추구는 특히 인물화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나는 내 눈이 발견한 작가 권준이 형태의 화가라는데 조금의 의심도 없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누드 초상화나 인물 스케치를 유심히 보면 그림 속 주인공의 생생한 감정 상태를 읽어내는 코드가 색감이나 어느 한 부분의 선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 연결된 선들의 유기적 조합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없으나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힘. 방치해도 형태에서 메시지가 읽혀질 수밖에 없는 교묘한 이중의 장치는 감상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가 고안해낸 소통의 의도적 방식인지 모른다.
권준의 이러한 실험정신은 소위 전신기법인 눈동자나 광대뼈, 뺨, 입술 등을 통해 인물의 관념성을 드러내려 했던 조선조 화공들이나, 거장 렘브란트가 이룩한 정신을 얼굴 속으로 끄집어 낸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확장된 세계일지 모른다.
그의 누드화를 감상한 사람은 느꼈을 것이다. 손끝으로 빚어낸 색의 농도는 갖춤이 있고난 뒤 자연스럽게 뒤따라온 꾸밈의 미학이라는데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그가 벗겨놓은 여인들에게서 우리의 눈이 관능을 미처 다 훔치기도 전에 뇌를 고독으로 전환시켜 버리는 마력에 취하게 된다. 이건 뭐랄까, 고독감에서 오는 편안함 같은 것이리라. 기실, 이 말은 대단히 어렵다. 고독이 베어져 나오는데 편안한 느낌이라니. 고독한 편안함과 외로움의 여유라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더 그윽하게 바라보면 대상을 무의미하게 바라보는 듯한, 그녀들의 눈빛에서 관조의 미학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가 않다. 여인은 바라보고 있는 대상 속에 녹아 있다. 그림 속 여인들은 하나 같이 채취에서 지친 영혼을 감싸 안을 듯 위로를 건네고 있다. 고독한 여자가 고독한 남자를 끌어안을 것 같은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그러나 누가 그 느낌을 설명하라면 대략 난감이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즉,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닌 것이다. 직관으로 얻어진 세계를 풀어서 말하라는 것은 무형의 정신적 영역을 고스란히 해부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심전심법이고 교외별전이니 스스로 감상하고 느끼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듯하다.
다만, 여기서 사족처럼 하나 덧붙일 것이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감상자가 사유한 세계로 작품을 보는 것과 같다. 그것은 우리가 여럿이서 똑 같은 영화를 감상했을 경우 감정의 표출에서 공통된 분모, 가령, 희노애락의 표출은 칸트 식으로 말하면 선험적 경험이다. 그러나 감성을 동원하여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야 하는 작품의 예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안목이 동원되고 보는 각도와 눈높이에 따라 작품의 해석과 이해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작가 최성달이 사유한 세계로 본 권준 작품과의 소통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쯤해서 시금방진 소리는 접으려고 한다.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곳에 있다.
고백하자면 내가 권준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 나는 그가 멀지 않은 시기에 가장 깊숙한 고독을 뿜어 올리기 위한 여정으로 나아갈 것이란 예감과 직면한다. 그의 정신의 원류이면서 그래서, 귀착점이 될 수밖에 없는 영혼의 아득한 곳으로의 질주. 그 마지막 극점(極點)에서 나는 그가 그림의 신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고흐가 광기의 붓놀림을 캔버스에 그대로 노출했듯, 권준 또한, 붓질마다 충만한 달인의 영감이 드러나는 대상은 그가 사람의 고독을 묘사할 때다. 누드와 노인 초상화에서 여실하게 베어져 나오는 그만의 감정 선들은 이때에 와서 비로써 확연해짐을 발견한다.
그녀들의 외로움과 노인의 고독한 체온이 감상자에게 처절하게 전달될 것 같은 전율은 필시 서늘한 눈매로 인간의 영혼을 관통하는 권준의 독심술 비법 때문일 것이다.
나는 반듯하고 잘 먹고 잘사는 들이 그림 잘 그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 그림에는 신뢰감이 없다. 겉치레만 녹아 있는 외양이 화려한 그림은 이내 식상함을 주기 마련이다. 권준에게 교과서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은 그 보고 붓을 들지 말라는 욕과 같다. 나는 그가 일탈을 꿈꿨을 때 그의 예술혼 또한, 덩달아 빛을 발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나는 작가 권준이 관학(官學)의 그림으로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로지 청신한 자유의 정신이 빗어낸 깊숙한 곳으로의 도달을 염원한다. 그를 멀쩡하게 세워놓으려는 의지는 제발 버려라. 그를 자유롭게 내 버려두라. 제 멋대로 생각하고 미친 듯이 구상한 세계를 캔버스에 옮겨 놓을 수 있도록 마음껏 내버려 두어야 한다. 만약 누군가 권준을 이해하고 싶다면 조용히 그의 내면에 귀기우리면 될 일이다. 당신의 의지가 발동되면 권준의 정신은 녹슬고 당신은 그의 정신을 갈아먹는 해충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에게서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물정 때문에 그림에 몰두할 수 없는 환경적 장애만 제거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실은 이일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세상은 권준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고단한 삶이, 이해해 주지 않은 세상이, 그를 자꾸만 어지러운 곳으로 내몬다. 그가 삭적을 결심할 만큼 이 땅은 척박하다.
불행히도 죽농과 조르주 루오가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이해되지 않은 세상과 맞서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살라버리려 했다.
서울생활 20년 만에 찾은 고향 안동은 대가의 작품 34점을 싸구려 1천 만 원으로 몽땅 훔칠 만큼 아직까지 그에게 벽으로 남아 있다.
상처받은 그의 정신이 움츠려들고 경직되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의 나래가 내려앉고 고독의 뒷심으로 버티던 가열 찬 붓끝이 둔탁해지는 순간, 우리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의 정신과 대면할지 모른다. 이는 실로 끔찍한 일이다. 그가 온전하지 않은 일로 부산을 떠는 것은 우리 스스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세계 미술사를 세잔과 고흐, 그리고 고갱이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그들을 당대에 알아보지 못한 실수를 우리 또한, 권준에게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보배로운 그에 정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고 예의다. 그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일인가

2009-09-01 13:2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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