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11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하루 전 여중생 딸자식으로부터 느닷없는 질문과 함께 용돈 3만원을 요구해 줬다.

아니 '줬다'기 보다 워낙 단호한 어조로 요구해 질문에 답할 시간도 없이 주는 바람에 오히려 '빼앗겼다'는 표현이 맞겠다.

용돈의 용처를 물으니 "오늘이 '빼빼로 데이'라서 그 과자를 예쁘게 포장해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질문을 받는 순간 여식(女息)의  달포 전 지나간 생일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애비로서의 실수는 안했다는 안도의 생각과 함께 새삼 달력을 보니 11일이 농업인의 날이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광고의 날이기도 한 사실을 확인하고 약간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이젠 상당수 국민들은 이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빼빼로를 서로 전달하는 '빼빼로 데이'로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올해 '빼빼로 데이'가 유독 짜증나는 이유가 뭘까?

제과업계에 묻고 싶다.
하필이면 왜 FTA 때문에 피까지 말라 버린 데다 힘들고 고되게 일하느라 얄팍한 상술을 부릴 여건조차 안 되는 순박한 농사꾼들의 생일과 같게 하느냐 말이다.

농민들은 풍년이 들어도 쌀값 하락 때문에 걱정, 흉년이 들면 그 이유 하나 만이라도 걱정이 태산이라 더 더욱 살맛 안 나는 우리나라 농업풍토에 살고 있다.

최근 경북도는 쌀값 안정을 위해 농어촌진흥기금 207억 원을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벼 수매 자금으로 특별 지원키로 하는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단기 종합대책을 마련, 쌀 산업정책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농민 살리기 정책에 일조는 못할망정 제과업계가 수입밀가루반죽에 달콤한 초콜릿을 조금 묻혀 300원에서 수만 원짜리 제품을 생산해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뿌리도 없는 기념일을 만들고, 우리는 그들 제과업체의 상술에 놀아나니 짜증이 나는 그 이유다.

전해지는 말로는 제과업계가 이날을 전후해 빼빼로 1년 총매출의 4분의3이 판매된다 하니 초대박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도 수년전부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보안업체인 안철수 연구소가 상업적 색체가 짙은 빼빼로 데이 대신 11월 11일의 모양이 우리의 전통 가래떡을 4개 세워놓은 모습에 착안, '가래떡 데이'를  제의한 것이 농협을 통해 확산, 2006년도부터 정부에서 개최하는 농업인의 날 주요행사의 하나로 시행해 오고 있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11월 11일을 한자로 바꾸면 十一月 十一日로 한자 十一(11)을 합치면 흙토(土)가 되고, 흙은 농업의 터전이 된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지난 1996년도에 농업인의 날로 공식 지정해 올해로 14회를 맞고 있다.

쌀은 한문으로 米(쌀미)를 쓴다.
米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이 된다. 우리의 조상들은 농부가 한 해 동안 88번의 정성을 들여야만 쌀 한 톨을 생산하게 된다며 소중히 여겨왔다.

물론 밀가루도 소중하나 우리의 주식은 밀이 아닌 쌀이다.
따라서 쌀 소비도 촉진하고 농민의 근심도 덜어주기 위해 1년에 한번이 아닌 매월 11일을 '가래떡 데이'로 만들자.

'데이(day)'가 찜찜하면 아예 '떡빼로 날'(떡 뽑으러 가는 날이란 의미)로 정해 범국민의 날로 선포할 것을 제의한다.

가래떡을 먹는 순간, 농민의 미소를 상상해 보라.
재미있으면서도 아름답지 않은가.

2009-11-12 13:20:31 / 최재영 기자(news79@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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