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신세동 동부초등학교 주변과 성진골 일대에 봄꽃이 활짝 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칙칙한 시멘트 벽면 대신 화사한 꽃무늬 벽화가 눈을 즐겁게 한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우스꽝스러운 조형물도 길을 지나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덕분에 마을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에서 <길섶미술로(路) 꾸미기>로 당선된 안동대학교 졸업생 이강준(미술학과 96학번, 미술학과 강사) 씨.

그는 문광부에서 사업비 총1억원을 지원받아 그해 7월부터 10월까지 같은 학교출신 미술작가들과 프로젝트 팀을 결성, 안동시 동부동 일대를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시간과 예산이 다소 부족했다. 계획한 만큼 일은 진척되지 않았고, 겨울이 찾아왔다. 팀원들도 손에서 붓을 놓고 아쉬워했다. 사업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채 끝나는 듯 했으나, 올해 안동시 중구동에서 자체예산의 얼마를 작업비용으로 따로 편성, 이들을 다시 섭외했다. 현재 성진골 일대는 이 사업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주민과의 소통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지역민들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을주민과 인근 초등학교학생들은 전문 미술가의 도움을 받아 마을 벽면에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크레파스 그림 벽화가 아이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연상케 했다.

벽화의 소재는 다양하다. 신세동 7층 전탑과 같은 지역의 문화유적이 건물 외벽에 그려지기도 하고, 꽃과 같은 자연물은 물론 인자한 집 주인의 얼굴 표정마저 그림의 소재가 됐다.

낡고 빛바랜 시멘트 벽면이 주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한 것이다.

전국은 지금 벽화 열풍  벽화 열풍은 안동만의 현상이 아니다. 최근 지역 예술가들 사이에서 마을과 공동체를 예술의 기반으로 삼는 지역주의운동이 일면서 '골목'이 하나의 화폭으로 대변신하고 있다.

허름하고 경사진 달동네 골목길이 어느새 벽화마을이란 이름표를 달고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기도 하는 요즘이다.

수원시는 지난해 희망근로자들을 노후 시설 벽화 채색작업에 투입해, 참가자들의 일에 대한 참여도를 높이는 동시에 도시미관 개선 효과까지 얻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는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여주시의 경우 여주여중·고등학교 담장 그림 벽화를 주민 투표로 결정해 행정관서와 주민들 간의 자연스런 소통을 유도하기도 했다.

전통과 문화를 표방한 하드웨어 공화국의 아이러니  우리시는 제43회 경북도민체전이 열렸던 지난 2005년부터 벽화사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행 초기 벽화사업이 활기를 띠는 듯 했으나 해가 지나면서 그 세가 점차 꺾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안동시는 도시 미관 개선을 위한 벽화사업에 매년 2천여만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공공환경디자인의 필요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현재 시 건축과가 이 일을 일임하고 있지만, 한 부서가 맡기엔 벽화사업은 너무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분야이다.

수도권 도시의 경우 이 사업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관공서 측에서 먼저 작가에게 섭외 요청을 하고, 사업비도 상당히 높게 책정하는 편이다. 이에 반해 안동은 전담부서조차 없는데다, 자치단체에서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강준 작가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어 시청을 찾아갔지만 대화가 가능한 루트가 없어 발걸음을 돌린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벽화사업은 투자대비 효과가 매우 큰 문화사업"이라며 "안동은 공공디자인에 접목할 아이템과 소스가 무궁무진한 곳이지만 행정당국의 의지가 다소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벽화사업의 진행 여부는 지자체 장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구난방식 벽화 피해야  지역의 한 미술전문가는 전국 곳곳에서 벽화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전체적인 기획 없이 중구난방으로 그려진 벽화들은 약(藥)보다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 벽화는 곧 안동의 얼굴이기에 지역의 이미지를 고려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세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미술은 일단 단순해야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공감대(공공성)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표현은 되도록 삼가야 하고, 검은색과 붉은색을 너무 많이 사용해 눈의 피로감을 준다든지, 그림의 톤이 너무 어두워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는 폐단은 피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영국에서는 벽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화학염료가 옛 건물의 벽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벽화의 소재에 대한 규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누군가가 혐오스러운 그림을 그렸을 경우 딱히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벽화 사업의 가장 큰 난제는 작가군(群)과 건설업체 측의 마찰이다.

20년 전에 비해 미술학도의 수가 20배나 늘어난 현 시점에서, 공공미술개선사업에 미술학과 졸업생들을 적극 고용한다면 환경정비와 일자리 창출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정책이긴 하지만 건설업체측이 이런 일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어 의견수렴의 돌파구가 없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전문미술가가 그린 그림과 업자가 그린 그림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건설업체에서도 대형벽화를 맡아 하는 경우 전문작가를 섭외해 작업을 하지만 비용과 시간의 제한이 있어 그림의 질이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사후관리가 더 중요  벽화는 그리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외부에 노출돼 있어 칠이 벗겨지기도 하고, 햇볕에 제 색을 잃기도 한다. 또 도시의 이미지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꾸준한 변신은 필수다. 사후관리를 하지 않으면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벽화는 계속 돈이 든다는 말이다. 소규모 자치단체들이 벽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선뜻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안동의 얼굴  안동을 지나는 외지 운전자들은 우리지역의 수많은 외관을 보게 된다. 이들이 좋은 벽화를 보게 된다면 우리 시의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진다. 아주 간단한 원리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딱딱한 회색계열의 공간에서 장시간 생활하게 되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다채로운 색상의 그림은 긴장을 풀어주고,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정서순화에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미래 천년의 도읍을 꿈꾸고, 백년의 주춧돌을 놓아 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잘 닦인 주작대로도, 웅장한 건물도 아닌 바로 안동의 환한 얼굴(?)이다.

▷ 낙동강변 철로 아래 차전놀이 벽화, 김종한 作

2010-04-09 09:49:24 / 권달우 기자(dalu80@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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