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는 거요? 그건 좀 건방진 표현 같아요······ '돕다'가 아니라 '나누다'가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그거 남들이랑 조금 나눴을 뿐 이예요."

25일 가톨릭상지대학 5대 전임 총장 류강하(세례명 베드로) 신부가 안동의료원 병실에 누워 가쁜 숨을 내몰아 쉬며 힘겹게 말했다.

가톨릭상지대학에 따르면 지난 15일 류 전임 총장 측으로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 달라'는 한 장의 메모와 함께 거금 4천만원이 전해졌다.

  '학생들 위해 써달라' 4천만원 쾌척

올해 72세를 맞는 류강하 신부는 1993년부터 2004년까지 10년을 넘게 가톨릭상지대학에서 총장으로 재직해 오다 지난 2004년 퇴임과 함께 홀연히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평소 아프리카 선교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평생을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교직을 떠나자마자 쉼 없이 곧바로 케냐 땅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그곳에서 선교활동과 더불어 의료보건봉사도 함께 했다. 보건소, 간호인, 의료약품 등을 지원받기 위해 개인 트럭을 이용해 천리 길도 마다 않고 달렸다.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 결국 몸에 무리...

하지만 누적된 피로와 해발 1,800m의 고산지대는 70이 다된 노인이 버텨내기엔 무리였다. 그곳에서 5년간 생활하면서 가난한 난민들을 돕겠다는 일념 하나만 생각했지 제 몸 챙기는데 소홀했다.

그래서 2008년 어쩔 수 없이 귀국길에 올랐고, 병원에선 특발성폐섬유화증이란 진단을 내놓았다. 평소 앓고 있던 병이 더 깊어진 것이다. 기침이 심해지고, 호흡곤란까지 찾아와 산소마스크까지 착용했다. 이 병은 만성적으로 진행되는 간질성 폐질환의 하나로 병의 경과가 좋지 않고, 증명된 치료방법도 아직 없다고 한다.

그는 현재 안동의료원에서 투병 중에 있다. 병원 측에 따르면 병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위독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직접 펜을 잡고 글을 남겼다.

'일금 4천만원 정. 상기 금액은 본인의 학교 재직 시 수당 일부를 내핍하여 절약한 자원입니다. 학교에 가난한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드립니다.'

  여행경비 아껴가며 모은 돈이 어느새

그는 자신에게 인색했다. "신부란 직업은 개인재산이 없어요. 퇴임을 하게 되면 모든 재산이 교구청에 환원되고, 그곳에서는 신부들이 여생을 살 생활비를 대줍니다." 교구청에서 나오는 출장비 중 점심값을 줄이고, 여비를 아껴가며 10년간 돈을 모았다. 그는 이를 두고 '내핍(耐乏 : 물자가 없는 것을 참고 견딤)'이라 표현했다. 웬만한 거리는 걸었고, 한 끼 식사는 3천원짜리 자장면으로 때웠다. 돈은 어느새 4천만원이나 되는 거금으로 불어있었다.

대학 측은 빠른 시일 내에 장학위원회를 소집해 기탁 받은 장학금을 그의 뜻에 따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라 밝혔다.

가톨릭상지대학 조창래 총장은 힘든 병마 속에서 학교를 잊지 않고 이런 큰 도움을 준 류강하 신부에게 그리스도의 은총을 빌었다. 또 그의 뜻을 기려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학교의 전 구성원들이 모든 역량을 모으겠다는 다짐도 했다.

류강하 전 총장은 "모든 게 부족한 아프리카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풍족하게 살고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아프리카를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채널과 장치를 마련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많이 제공됐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침 섞인 목소리로 "교육자의 마음이 진정으로 전해져, 학생들에게 내실 있는 교육을 전파할 수 있는 학교가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시대의 진정한 선교자이자, 위대한 봉사자가 지금 '다른 출발을 준비하는 단계'에 서 있다.

2010-05-25 10:23:42 / 권달우 기자(dalu80@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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