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가득 운무로 뒤덮여 숨죽였던 미명의 세상! 응결된 아픔의 비애로 무겁게 눌려 덮은 오랜 자국들, 어둠에서 벗어나 여명의 빛을 향한다.

무위(無爲)의 춤을 추며…

초암계곡 딸 오붓이 펼쳐 놓은 죽계천 바위 병풍, 울창한 노송 숲 어우러진 찬란한 역사 순흥 고을! 죽계천 위로 흐르던 대쪽 같은 기개, 그곳에서 무위의 춤을 춘다.

그가 떠난 빈자리,

백운담에 수장된 원혼의 울음소리, 떠날 때 비우고 간 그 자리가 사뭇 시려 세태를 통렬하니 가슴 속 깊은 곳에 솟아오르는 한(恨)이 있다. 설 자리 잃어버려 울음소리 요란한 그대 떠난 빈자리가 사뭇 시려…

향수서린 죽계구곡(竹溪九曲) 햇살 고아라!

소백산 높고 죽계수 맑은 이곳 순흥 마을에 아름답게 드리워진 해묵은 가지들, 한 떨기 꽃 그림자 드리워졌네! 혼백이 바다 건너 새 천 년이 열리니 어둠은 사라지고 햇살 고운 풀빛이어라.

영주시 순흥면에는 단종복위 실패로 정축지변(1456년, 세조 3년)에 참화를 입은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의 위패를 봉안한 금성단이 있고, 소수서원 앞 옛 청다리 밑으로 죽계천이 흐른다.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된 의사(義士)들이 처형·살육되고 수장되어 흘린 피가 죽계천을 지나 7㎞를 흘러 멋은 마을이 '피끝마을'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무용화해 희생된 넋의 한을 달래고, 어둠에서 벗어나 좋은 세상 누리길 염원하며 무위의 춤을 춘다.

한두레무용단은 2008년 6월28일 안동대학교 솔뫼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된 경북무용제에서 '무위의 춤을 추며…'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오곡백과가 수줍게 무리지어 몸단장한 가을날, 이혜란 무용단장은 살포시 미소인사를 건넨다. 무위의 춤을 추기에는 너무도 소박한 건물, 그곳에 조심스레 숨겨놓은 별처럼, 다락방에 꼭꼭 숨겨둔 보물처럼 이혜란 무용단장은 조용히 호흡하며 세상과 만나고 있다.

전통문화가 깃든 영주에서의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접하게 된 기계 체조를 시작으로 여중·고 시절 발레를 전공한 무용선생님을 운명과도 같이 만났다.

한 해 동안 무용을 사사하시던 선생님은 서울로 전근 가셨고, 선생님을 따라 여고 2학년부터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먼 길을 다니면서도 아무런 조건 없이 무용이 좋았다는 소박한 소녀는 그 후 이화여대학교 무용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준비된 무용수로 20여 년을 지냈다.

무용단장 이혜란은 "지금 생각해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길을 걸었던 것 같아요. 전 어렸을 때 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그렇게 훌륭한 분들인 줄도 몰랐어요. 그때 그분들을 만났던 것이 행운의 시작이었는데 말이죠."

 "스승이신 구본숙 교수님은 너는 나의 1호 제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좀 더 크고 넓은 곳에서 꿈을 펼치라고 하시지만 전 이곳에서 어린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보람되고 재밌어요. 무용의 불모지라고 일컫는 경북에서 공연하는 것이 힘겨운 작업일지라도 우리 색을 살리고, 지역색을 살리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숙제에요"라고 했다.

제자들이 지방에서 배웠다는 이유로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때에 가장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이혜란 무용단장. 2000년 1월에 창단한 한두레무용단도 제자와 함께 두레를 엮어 공연을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두레무용단은 이혜란의 제자들로 구성된 16명의 무용수로 9년간 전국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 제자들 역시 총망받는 안무·연출가로 인정받고 있다.

현대무용이 가장 한국적이며, 한국무용이 가장 현대적이라는 그녀는 국외에서도 환영받는 문화사절단이다. 이처럼 감성과 열정을 몸에 가득 품고 살면서도, 늘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제자를 위해라면 언제든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랑, 그 사랑이 비로소 몰래 스며든 스승의 내리사랑이 아닐까…

2009-10-10 23:03:20 / 최혜정 기자(chj21@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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